 |
“세상에 어느 바보가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뙤약볕 흙먼지 속을 터덜터덜 걸어야 하는 보병을 하고 싶었을까? 기왕 군대생활을 할 바에야 훨씬 더 품위 있고 우아할 뿐 아니라, 편하게 말 타고 다니는 기병하지….”
예나 지금이나 보병은 고달프다.
무거운 배낭과 소총을 짊어지고 흙먼지 속을 터덜터덜 걸어서 전쟁터까지 가야할 뿐 아니라, 전장에 도착해서도 적탄을 막아줄 아무런 방어수단도 없이 그 알량한 소총 한 자루를 손에 들고 사실상 발가벗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몸뚱이를 적의 탄막 앞에 내던져야 한다.
요즘은 세상이 많이 달라져 ‘기계화 보병’이란 것도 생겨나서 좋은 장비를 갖춘 선진국의 보병들은 「워리어」나 「브래들리」같은 보병전투차에 태워 적의 코앞까지 실어 나르기도 하고, 우리나라처럼 돈 없는 나라 군인들도 최소한 먼 길 갈 때 트럭정도는 얻어 탈 수가 있게 되었다.
하지만 전투에 돌입하면 알몸에 소총 한 자루로 싸워야 하는 데는 여전히 변함없고, 이처럼 소총에다 유탄발사기, 기관총에다 박격포 포판까지 나눠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터덜터덜 걸어가는 보병 병사들을 더욱 살기 싫게(?) 만드는 게 한 가지 있으니, 그게 바로 흙먼지를 팍팍 피워 올리며 그들을 앞질러 달려가는 전차와 포병대의 트럭, 그리고 대대장, 연대장님의 ‘찝차’다.
이럴 때 한입 가득히 날아든 흙먼지가 서걱거리는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오는 말 - “어떤 X놈이 줄 잘 서서 차타고 씽씽 달리고…”
대대장, 연대장님의 찝차야 원래 높은 사람이니 하는 수 없다 치더라도 냉, 난방이 다 들어오는 전차는 부러움 또는 불만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바로 이런 불평등은 그 옛날부터 존재했다.
오늘날의 전차부대를 비롯한 모든 기계화 부대를 다 합쳐 놓은 것과 같은 기능-바로 「기병」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은 동방에서… 고대의 기병
말이 언제부터 인간과 더불어 전쟁터를 누비기 시작했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하지만 어쨌든 군마(軍馬)의 역사가 인간이 창칼을 들고 싸움질을 시작한 것만큼이나 오래 되었으리라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여기서 퀴즈 하나-바로 그 말을 타고 싸움질을 시작한 것은 우리 동양이 먼저일까? 아니면 서양이 먼저일까?
아마도 여기서 많은 분들이 당연히 “서양이요!”하고 소리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고 많다. 「아이반호우」같은 영화를 보면 흡사 로봇 「자쿠」처럼 생긴 갑옷을 입은-갑옷을 입었다기보다는 로봇 껍질 속에 사랑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 보이는- 기사들이, 그것도 모자라 말에도 로봇 같은 갑옷을 둘러씌우고 벌이는 마상창술 시합이 나오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거창하고 멋있던가 말이다.
게다가 또 「사라브레드」니 「앵글로아랍」이니 「안달루시안」이니 하는 이름의, 집채만큼 크고 미끈하게 빠진 준마들은 모두 유럽 산이 아닌가? 원래 중국이나 일본, 우리나리에는 이런 대형마가 없었기 때문에 광개토대왕이나 우리 민족의 성웅 이순신 장군 같은 분들도 사실은 그 우람한 풍채와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쪼그맣고 볼품없는 조랑말을 타고 다니셨다는 사실은 조금만 이쪽 방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다 알고 계실 것이다. (큰말타고 나온 TV 사극들은 모두 ‘뻥’이다) 그래서 지금도 올림픽의 마장마술 경기에 출전하는 우리 국가대표선수들이 타는 말도 하나같이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유럽에서 수입해온 놈이거나, 그런 ‘귀하신 몸’들의 혈통을 이어받은 명마들이 아니던가 말이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당연히 말 타고 싸우는 데는 우리 동양보디는 서양 사람들이 더 익숙하고 한수 위라고 단정하기에 충분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다. 그 유럽인 들의 기병전술은 우리 동양에서 배워간 것이란 얘기다.
우선 역사를 살펴보면 아시아에는 흔히 ‘기마민족"이라고 불리는 인종과 나라가 엄청나게 많다. 역사상 최초로 말이 끄는 전차(戰車)를 만들어 전쟁에 사용한 것은 중동아시아의 앗시리아(지금의 이라크)와 이집트이며, 기원전 4세기경 지금의 우크라이나 일대에 강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스키타이」족도 기마민족이었다.
유럽에서는 가장 사납고 거칠다고 소문난 「게르만」족을 마치 쥐 몰듯 몰아붙여 그 게르만족으로 하여금 대제국 로마를 무너뜨리게 만든 것도 아시아인 기마민족인 「훈」족이었는데, 그들이 가진 이런 가공할 전투력의 밑천이 바로 그때까지만 해도 유럽인 들에게는 영 익숙지 않은 짐승 - 바로 ‘말"이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 훈족으로부터 얼마나 혼쭐이 났으면 BC 4세기경 로마의 역사가 「암미아누스 마르셀리우스」는 다음과 같은, 다분히 과장된 글을 남겨 놓고 있다. |